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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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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개인저자샌델, 마이클
이창신
발행사항파주: 김영사, 2010, 2011.
형태사항404p.; 23cm+ 비디오디스크(DVD) 1매.
ISBN9788934939603
일반주기색인수록
'AZ258740, AZ265422'는 부록 없음
원서명Sandel, Michael J.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비통제주제어정의,JUSTICE,RIGHT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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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매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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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 초록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이자, 공동체주의 이론의 대표적인 4대 이론가로 손꼽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실제 하버드대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일 때도 있는가와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소개

  • 저자소개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27세에 최연소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전설적인 강연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는 동명의 책으로 3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명실공히 이 시대 최고 석학이자 철학계의 록스타이다.


서평

  •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 *******N8114482 | 2016-03-28 ] 4 | 추천 (0)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유행어가 된 듯하다. “~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보면 친숙하고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일상적인 용도와 철학적인 용도, 두 가지로 쓰인다. 일상적인 용도로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 단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 그것의 특징에 대해 물어보는 용도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도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인 용도로는 사랑이나 앎 뿐만 아니라 책상, 침대까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실체나 추상적인 것들이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던지는 첫번째 질문으로 쓰인다. 이 용도로는 주로 철학자들이 많이 쓴다.

‘~란 무엇인가?’라는 말이 이토록 친숙하게 느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전체적으로 철학적인 질문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에 기여한 책이자 ‘~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유행시킨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는 ‘Justice'다. ’Justice?'도 아니고, 어디에도 ’무엇인가?‘라는 물음표는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최고의 번역이면서도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를 낳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번역인 이유는 이 책이 ‘정의’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의론’처럼 딱딱한 용어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는 길을 택했다. 반면 이 번역이 낳은 가장 큰 오해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이 책이 해준다는 착각이다. 필자 역시도 그런 오해를 가지고 이 책을 집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였다. 저자는 ‘정의’의 문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문제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추구해야 할 것을 크게 ‘복지’, ‘자유’, ‘미덕’ 이렇게 3가지로 보았다.

‘복지’는 다른 말로 풀면 ‘행복’이다.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주장의 대표주자로 ‘공리주의’를 들었다.

‘공리주의’는 18세기의 철학자인 제레미 벤담이 주장한 것이다. 핵심 내용은 ‘사람은 누구나 쾌락, 즉 행복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행복, 즉 복지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다.’라고 보았다. 이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복지를 수치화할 필요가 있다.

벤담은 복지를 수치화하기 위해 ‘공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공리’는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이나 불행을 막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이 공리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배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결정한다. 벤담은 우리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이 공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정책에 대해 입법을 한다고 하자. 이 때 벤담은 입법자들이 ‘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하고 모든 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리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공리의 ‘총합’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개인의 가치는 모든 사람들의 공리를 계산할 때 더해지는 ‘1’만큼의 공리만큼만 중요하다. 이런 계산법을 적용하면 소수의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불행하게 만들어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행동이 정당화된다. ‘왕따’ 같은 문제 말이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행동이 옳거나 정의롭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공리주의는 모든 가치를 하나로 환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사람의 목숨과 돈도 포함된다. 사람의 목숨과 돈을 하나의 가치로 환산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사람의 목숨에 값어치를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에서 내놓은 ‘핀토’ 자동차의 사례를 보자. 이 차는 뒤에서 들이받으면 쉽게 폭발하는 결함이 있는 차였다. 이 차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은 사람이 소송을 냈고, 소송 과정에서 기술자들도 이 결함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영진들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결함을 고칠 때의 비용과 결함을 고치지 않았을 때 사망자, 부상자들과 차량에 들어가는 비용을 비교했다. 결함을 해결하는 비용은 차 한 대당 겨우 11달러였고 이것을 전체 차량 수에 곱하면 1억 3750만 달러였다. 결함을 해결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사망자 180명과 부상자 180명에게 들어갈 비용과 폭발할 차량의 가치를 합하면 4950만 달러였다. 경영진들은 결함을 해결하지 않고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로 했다. 이 때 사망자에게 매겨진 비용은 20만 달러였고 부상자에게 매겨진 비용은 6만 7천 달러였다. 이 때 포드 사 경영진들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은 복지를 다루는 공리주의에 ‘자유’를 더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다수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밀은 모든 가치를 환산할 때 질적인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이 높은 쾌락과 질이 낮은 쾌락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질이 높은 쾌락을 택하지는 않는다. 고급스러운 다큐멘터리와 막장 드라마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를 택하지 않는가?

이 반박에 대응하기 위해 밀은 “만족하는 바보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 바보가 만족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자기 시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공리와 무관한 가치의 기준이 생긴다는 문제점이 있다. 공리주의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공리주의는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책에서 다루는 것은 ‘자유’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가장 이 말에 충실한 주장이 ‘자유지상주의’의 주장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모든 개인들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최대의 자유를 누릴 때 가장 정의롭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반대한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수준의 최소 국가만이 정의로운 국가다. 매력적인 말이지만, 그게 옳을 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2001년 독일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A라는 사람은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먹혀 줄 사람을 찾는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마을을 찾았다. 광고를 낸 B는 금전적 포상은 없고 체험만 제공하겠다고 했고 A는 그것을 허락했다. B는 A를 죽여 토막낸 뒤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결국 덜미가 잡힌 그는 체포됐는데, 이미 A는 20kg 가까이 먹힌 뒤였다. 변호인은 A가 B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B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정은 1심에서 우발적 살인죄를 적용해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하지만 2년 뒤 항소 법원은 형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B는 살인죄를 적용받아서는 안된다. A는 B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유’를 다룬 또다른 사람은 이마누엘 칸트다. 칸트 역시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의 정의와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정의가 달랐을 뿐이다.

그는 인간이 다른 사물들과 구별될 수 있는 특징으로 ‘이성’을 꼽았다. 그래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정의한 반면 칸트는 진정으로 자유로은 것은 ‘이성에 의해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에게 있어 ‘욕구’, ‘중력 법칙’ 같이 다른 곳에서 주어진 결정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타율’이며, 자율이 아니었다. 칸트의 자유에 대한 엄격한 정의는 자유와 미덕이 결합한 독특한 관점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칸트는 어떤 행동의 정의로움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의 ‘동기’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동의 과정과 결과가 같더라도 동기가 도덕적이지 못하면 그 행동은 정의로운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도덕적’인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기준을 내리지는 않지만 그가 도덕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는 그가 제시한 ‘정언 명령’을 통해 알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이 ‘정언 명령’과 ‘가언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정언 명령’은 조건이 없는 명령이고, ‘가언 명령’은 조건이 있는 명령이다. 정언 명령은 그에 따른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고, 가언 명령은 그에 따른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으로써만 바람직하다. 칸트에 따르면 가언 명령은 이성 외의 다른 것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도덕적이지 않고 정언 명령만이 도덕적이다.

그는 ‘정언 명령’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어떤 경우에도 모순 없이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친구에게 못 갚을 것을 알면서도 돈을 빌린다고 해보자. 이 때 돈을 갚을 수 있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돈을 빌리는 것은 도덕적인 행동일까? 칸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돈이 필요할 때마다 거짓 약속을 한다면 누구도 그 약속을 믿지 않을 것이고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거짓 약속은 비이성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고, 보편적인 행동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거짓 약속은 정언 명령이 아니고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 된다.

둘째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칸트는 “존재만으로도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에 정언 명령의 토대가 존재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이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언 명령의 토대가 되는, 즉 도덕적 기준의 토대가 되는 인간과 인간의 이성을 위한 행동이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칸트는 ‘이성’을 통해 도출해 낸 ‘정언 명령’에 따른 행동이 도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때 이성을 외부의 영향이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이런 칸트의 관점은 자유의 정의를 좁힘으로써 정의를 향해 한 발 나아간 듯하지만 여기에서도 생각해 봐야 할 구석은 있다. 칸트는 인간은 정언 명령에 따라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친구가 내 집에 숨어들어온 상태에서 살인자가 내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칸트는 ‘진실’을 대답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이에 따라서 살인자에게 친구의 위치를 알려준다면 그것은 도덕적인 행동일까?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문제에서 자신의 논리에 따라 칸트를 변호한다. 살인자에게 ‘한 시간 전에 저 아래 가게 쪽으로 가는 걸 봤어요.’라고 진실이지만 그를 오도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다. 칸트의 논리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가? 난 아니다. 이런 억지스러운 대답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도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칸트의 주장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존 롤스의 ‘평등론’ 역시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평등’이라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롤스가 사회 계약에 대해 가지는 관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롤스는 사회의 원칙을 이루는 사회 계약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계약 당사자들이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계약 당사자들, 즉 국민들은 자신이 그 사회에서 어떤 계층에 있는지, 성별이 무엇인지, 인종이 무엇인지, 어떤 민족인지 등 관련된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어떤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모른다. 이런 위치에서 서로 원칙들을 합의한다면 그 원칙들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롤스는 말한다. 그러면 그런 조건에서 우리는 어떤 조건에 합의하게 될까?

롤스는 일단 언론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자유가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소득과 부의 경우에는 모두 똑같지는 않아도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수준에서 불평등이 결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 두 번째 조건을 ‘차등 원칙’이라고 말한다.

‘차등 원칙’에 따르면 소득이나 부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라 자유롭게 분배되는 것, 개인이 가진 능력에 따라 분배되는 것 모두 사회계약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 부모의 조건이나 선천적인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등 원칙은 이런 상황이라면 무지의 장막 뒤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원칙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출생 조건이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억지로 제한을 가해 평등을 이루는 행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선천적인 조건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것을 개발하고 연마하도록 독려하되 그 조건으로 시장에서 거둔 대가는 공동체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선천적인 조건이 부족한 사람들과 결과물을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슈퍼 스타의 예가 적절할 것 같다. 노래를 잘 하는 슈퍼 스타 A가 있다고 하자. A는 앨범을 내서 매년 수억 원의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렇다면 이게 모두 A가 받아야 할 몫일까? 롤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A는 운이 좋게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회에 태어났고, 노래를 잘 한다는 능력을 운 좋게 받았을 뿐이다. A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합의했던 사회 계약에 따라 자신이 받는 수익의 일부를 공동체에서 선천적 조건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써야 한다.

롤스는 ‘자유’의 최대화를 정의로운 사회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공동선’을 결합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다루는 것은 ‘미덕’, ‘공공선’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화의 적절한 배분을 위해서는 그 ‘텔로스, 즉 ‘목적’을 따져야 하며 배분이 목적과 부합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때 적절한 목적은 적절한 ‘미덕’을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에 좋은 테니스 코트가 있다고 하자. 테니스 코트 사용권을 배분할 때 사용료를 비싸게 정해 놓고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줄 수도 있고 거물급 교수나 총장에게 우선권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유명한 교수 두 사람이 테니스를 치는데 그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하자. 이 때 실력이 뛰어난 대학 테니스 부원이 코트를 사용하겠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상황에서 실력 없는 사용자가 쓰기에는 아까운 테니스 코트를 대학 테니스 부원에게 배분하고 두 교수에게는 질이 조금 낮은 테니스 코트를 배분하는 것이 목적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두 배분 방법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인 고대에는 흔한 방식이었다. 고대인들은 불이 하늘로 향하는 이유가 본래의 자리인 하늘에 닿고자 해서이고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원래 있던 땅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이 출현한 이후 자연을 설명할 때 목적론은 의미 있는 주장이 아니게 됐다. 오늘날 들어 ‘목적론’은 옛날 방식 취급을 받고 있다.

저자는 목적론을 옛날 방식으로 치부하게 되면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공리주의는 ‘정의와 권리’와 같은 ‘선함’을 하나의 통일된 가치 척도로 환산해 획일화하며 그 질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원칙의 문제가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든다는 문제점을 가진다고 보았다. 자유에 기초한 이론들은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중요성, 삶의 질과 특성, 목적의 도덕적 가치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가치들을 왜 추구하는지 그 ‘목적’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모두 참여해 진정으로 추구할 수 있는 공동선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책을 마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전체적으로 정의론에 대한 주장에서 기반이 되는 세 가지 기본 요소인 ‘복지’, ‘자유’, ‘미덕’과 그에 대한 주장들을 잘 정리해 놓았다. 주장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나 한계도 모두 균형있게 제시했다. 다만 추상적인 용어들을 너무 많이 사용해 간혹 책의 흐름이 끊기고 이해가 어려웠다는 점이 아쉬웠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민들이 참여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때문에 이 책에 대해 실망하고,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한다. “이 책은 쓰레기다!”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때로 심오한 도덕적 신념을 공적인 담론의 장으로 가져오길 주저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실수라고 생각한다. 정의에 관해 경쟁하는 원칙들을 두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다투는 것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성숙되고 자신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징표다.”

저자는 서론에서부터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이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조된다.

“도덕적 이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공적 참여를 한다면 상호존중의 기반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이 공적 생활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배우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필자는 이 말에 공감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모습만 봐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항상 그 ‘답’에만 집착한다. ‘맞고 틀림’만 인정할 뿐 ‘다른 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사회 전반에 자리잡게 된 이유를 교육에서 찾고 싶다.

철학 수업을 예로 들어 보겠다. 우리가 ‘철학 개론’이라고 배우는 철학은 한 학기동안 ‘무지의 장막’이니, ‘정언 명령’이니 하는 단편적인 용어들이나 철학자들의 이름을 외우게 하고는 그걸 잘 외웠는지 시험을 본다. 내가 들었던 이런 수업에는 철학적인 사유가 전혀 없었다. 이런 알맹이 없는 수업은 시간낭비다. 철학적 사유가 없는 철학 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이 문제는 학점을 반드시 매겨야 한다는 문제, 더 나아가 반드시 학점을 구별시켜서 매겨야 한다는 상대평가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1등부터 마지막 등수까지 ‘정확하게’ 줄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교육 기관들은 이런 요구에 부응해 논란의 여지가 없게끔 등수를 매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철저히 등수를 매기려면 논리적으로 완벽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 기관은 학생들에게 ‘정확한 답’을 요구한다. 당장 시대의 지성인이라 자부해야 할 대학생들을 선발하는 수능 시험의 모든 과목들, 심지어 국어에서까지 객관식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답이 어떻게 나왔는지, 왜 그렇게 나왔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확한 답이 나오면 그만이다. 이런 교육 체계에서 12년, 많게는 16년 이상의 교육 기간 동안 학생들은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답을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학생들이 모인 곳이 지금의 결과지상주의 사회다. 토론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고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책을 ‘쓰레기’라고까지 칭한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답’,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은 쓸모 없는 책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키가 고장난 배처럼 제멋대로 흘러가다 좌초되고 말 것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안의 하나가 프랑스 사회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교육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대입 시험이 수능이라면, 프랑스의 대입 시험은 ‘바칼로레아’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100% 주관식 시험이라는 것이다. 답뿐만 아니라 그 과정도 보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철학 시험은 프랑스 온 국민들이 주목한다. 문제가 알려지면 곧 그 문제는 프랑스 국민들의 토론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무엇을 비인간적 행위라고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심오한 문제들로 여겨지겠지만 이는 프랑스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교육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인상깊었던 것은 정의에 대해 묻는 방법을 잘 제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방법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흔히 옳은 행위에 대한 견해나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는다. 그다음 그 원칙에 반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렇게 이성의 세계와 행동의 세계를 오가며 이성과 행동을 수정해야 정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정의에 대한 위대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할 때도 이 방법을 철저하게 사용한다.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득될 것이다.

필자도 그것을 경험했다. 공리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방향이 가장 합리적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핀토’의 사례처럼 공리주의에 따라 인명을 계산하는 부분에서는 공리주의에 대한 불편함과 반감이 들었고 ‘이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내가 했던 가치 판단들을 되돌아보며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칸트의 주장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살인자에게 친구의 위치를 알려주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서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칸트의 주장이 억지스러운 점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칸트라면 공리주의가 갖는 딜레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라는 생각이 들며 칸트 역시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겠다는 것을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미덕’은 무엇이고 어떤 ‘미덕’을 추구해야 할 지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그 ‘미덕’을 정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으로 연결됐다.

이런 기법들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내용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이 책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이 특징을 크게 보완해 주는 부분이 이 책을 감수한 김선욱 교수가 쓴 해제 부분이다. 해제에서 김선욱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독자들은 다양한 사례와 질문이 제시되지만 해답은 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갖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 보면, 이 책은 하나의 주장에서 다른 주장으로 넘어 갈 때 이루어지는 분석과 비판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의 길을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답을 얻으려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여러 주장들의 비판적 만남의 과정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관점의 다양성을 잘 살펴야 한다.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해제가 책 자체가 가지는 약점을 모두 보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칫 전달되지 못할 수 있었던 저자의 의도를 해제에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친절한 해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더 잘 전달되었고 한국에서 특히 큰 인기를 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정의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 지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른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모르고도 ‘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는 한 발 나아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철학에서는 ‘인식론’과 관련되어 있다. 인식론적 관점에

나는 나의 정의론적 스탠스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직 내가 정의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책임이나 회피가 아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한 발 나아간 셈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정의론’처럼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분과에 ‘인식론’이라는 것이 있다. 인식론에서 다루는 문제는 ‘어떤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전통적인 인식론의 관점에서는 JTB(Justified True Belief) 분석을 통해 ‘안다’라는 말을 정의하려고 했다.

JTB 분석에서 무언가를 안다고 하기 위해서는 일단 대상을 믿어야 한다. 이 때 믿는다는 것은 ‘신앙’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그 대상이 참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분석에 따르면 고대인들이 받아들였던 천동설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천동설은 분명한 거짓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대상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상의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1=2’라는 것을 초등학생에게 설명할 때 초등학생이 ‘왜 1+1=2야?’라고 물어보는 것에 대답할 수 없으면 ‘1+1=2라는 것을 안다’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JTB 분석에 따라 무엇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JTB 분석을 통과하고도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지식이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A와 B는 S사의 지원자다. 이 때 A는 B가 S사에 합격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 따라서 A는 B가 S사에 합격했다고 믿는다. 이 때 B의 주머니에 동전이 10개 있다. 그렇다면 S사 합격자의 주머니에 동전이 10개 있다. A는 여기까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B가 아닌 A가 S사 합격자였고 A의 주머니에도 동전이 10개 있었다. 이 때 A가 ‘S사 합격자의 주머니에 동전이 10개 있다.’라는 지식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바로 ‘게티어 문제’다. 이런 반례는 JTB 분석을 통과한 지식이라도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처럼 ‘안다’는 것의 정의를 작은 범위로 제한하는 것은 ‘인식론’에만 국한된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고 있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어떤 문제에 있어서 ‘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만큼 오만한 일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정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아니 멀리 안 가도 내 자신만 반성해 봐도 어설프게 알면서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다니는 경우가 참 많다. 우리 모두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겸손함과 지혜를 가진다면 저자가 바라는 ‘정의가 무엇인가?’라고 묻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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